아이들의 창의력 지수가 IQ와 반대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남 얘기처럼 들렸는데, 솔직히 우리 아이 이야기였습니다. 아이가 "심심해"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창의력이 사라지는 이유, 이미 데이터가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 김경희 교수가 30만 건의 데이터를 18년간 분석한 결과, 아이들의 IQ는 꾸준히 올랐지만 창의력 지수는 오히려 하락했습니다(출처: William & Mary 대학교). 특히 창의력 하락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였는데, 공교롭게도 구조화된 학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저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직 30개월밖에 안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심심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 뭐였을 것 같으세요? '우리 집에 장난감이 너무 없구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하나둘 사기 시작했고, 미디어를 보여주며 그 빈 시간을 채웠습니다. 그게 잘못된 방향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영국 솔퍼드 대학교 테레사 벨턴 박사는 "심심함은 창의성의 어머니"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이들이 혼자 놀지 못하고 끊임없이 외부 자극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 자체가 창의력 퇴보의 신호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지금 우리 아이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DMN, 심심할 때 켜지는 뇌의 창의력 엔진
아이가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시나요? 그 순간 활성화되는 것이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입니다. DMN이란 외부 자극이 없을 때,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뇌가 자발적으로 가동하는 신경망을 말합니다. 기억을 연결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일이 모두 이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2001년 워싱턴 대학교 마커스 라이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뇌가 멍한 상태일 때 오히려 집중해서 문제를 풀 때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출처: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수학 문제를 풀 때는 특정 부위만 쓰이지만, 멍할 때는 뇌 전체가 일종의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집중해서 과제를 수행할 때 켜지는 회로는 TPN(Task-Positive Network)입니다. TPN이란 목표 지향적 사고나 논리적 문제 풀이에 관여하는 네트워크로, DMN과는 시소처럼 번갈아 작동합니다. 즉, 둘은 동시에 켜질 수 없습니다. 학원에서 배운 지식이 진짜 자신의 것이 되려면 DMN이 가동되는 시간, 즉 '심심한 시간'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이의 빈 시간을 장난감과 미디어로 빼곡히 채웠던 건 결국 DMN이 켜질 타이밍을 계속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서 적지 않게 뜨끔했습니다.
좋은 심심함 vs 나쁜 심심함,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모든 심심함이 창의력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심심함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나쁜 심심함, 다른 하나는 좋은 심심함입니다.
나쁜 심심함은 자극이 갑자기 끊겼을 때 오는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입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화면이 꺼졌을 때 아이가 보이는 반응, 그게 바로 나쁜 심심함의 전형입니다. 뇌가 이미 외부 자극에 길들여진 상태라 다음 입력을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대기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DMN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반면 좋은 심심함은 서서히 내면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아이가 심심함을 느끼고 7~12분 정도가 지나면 DMN이 본격적으로 켜지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 시간을 부모가 참고 지켜봐 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샌디 만 박사의 연구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던 그룹이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이는 지루함 자체가 뇌로 하여금 스스로 의미를 만들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훨씬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심심해'를 반복할 때 그냥 두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무언가 방치하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줍니다. 그 불안을 참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장난감을 쥐여주거나 미디어를 틀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심심함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루 최소 1시간, 스마트폰과 TV 없이 아이 스스로 시간을 채우게 하기
- 끈, 종이박스, 클레이처럼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비구조화된 재료 제공하기
- 결과가 아닌 과정에 반응하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 자연에서 시간 보내기 (자연은 DMN 활성화에 최적의 환경입니다)
- 부모가 먼저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 보여주기
자유시간 없는 아이, AI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창의력이 왜 중요한지는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정해진 공식을 빠르게 적용하는 능력은 AI가 이미 인간보다 뛰어납니다. 앞으로 인간에게 남는 고유한 능력은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 즉 진짜 창의력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캐럴 드웩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지식을 많이 쌓은 아이들은 오히려 고정된 틀 때문에 경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자유롭게 놀고 심심함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들은 지식이 조금 부족해도 틀을 깨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능력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가 만 3세에서 11세 사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 시기에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 즉 뇌 회로가 경험에 따라 유연하게 재구성되는 특성을 활용해 DMN 회로를 탄탄하게 쌓아야 합니다.
저는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실제로는 창의력이 자라날 토양을 계속 없애고 있었습니다. 학원이 나쁜 게 아니라, 학원만 있고 심심한 시간이 없는 구조가 문제라는 말이 지금은 정말 크게 와닿습니다.
12살이 지났더라도 아이의 일정에 하루에 한시간만이라도 빈시간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뇌는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기 때문에 2주 정도가 지나면 아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하니, 저도 지금부터 그 불편함을 함께 버텨볼 생각입니다.
아이가 "심심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이 뇌가 성장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면 어떻게 반응하는 게 맞을까요? 저는 앞으로는 "그래? 그럼 한번 심심해 봐"라고 말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