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말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언니는 매일 엄마한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냈는데, 저는 그냥 방에 들어가버렸습니다. 그게 그냥 성격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그 차이가 꽤 크게 벌어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말로, 글로 꺼내는 연습이 왜 중요한지, 책만 많이 읽히면 된다는 생각이 왜 부족한지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책만 읽힌다고 사고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 말하기 훈련이 핵심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책을 꽤 읽은 아이인데, 수학 문제에서 문장이 조금만 길어지면 멈춰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지 압니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수학 문장제, 그러니까 숫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설명한 뒤 풀어야 하는 문제 유형에서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손을 놓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긴 문장을 읽고 의미를 추론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함께였습니다. 실제로 2023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초등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의 국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문해력(文解力)이란 글자를 읽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의 말과 글에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쉽게 말해 말귀를 알아듣고 그 의미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이 문해력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제 언니와 저의 차이가 딱 그 증거였습니다. 둘 다 내향적인 성격이고 독서량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발표를 잘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풀어내는 사람이 됐고, 저는 지금도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로 꺼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한테 매일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던 언니의 그 습관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기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완결문(完結文) 형태입니다. 완결문이란 "응", "몰라", "좋아" 같은 단답이 아니라 "오늘 체육 시간이 재밌었는데, 피구를 했는데 우리 팀이 이겼어"처럼 주어, 서술어가 갖춰진 온전한 문장을 말합니다. 이 완결문으로 말하는 순간 아이는 자기 생각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것이 논리적 사고의 첫 단추가 됩니다.
아이가 부모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그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쓰기 습관이 뇌를 바꿉니다 — 일기 한 줄부터 시작하는 이유
그렇다면 말하기 훈련 다음은 무엇일까요? 저는 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아쉬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쓰기가 단순히 국어 점수를 올리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소근육(小筋肉)을 자극합니다. 소근육이란 손가락처럼 정밀한 움직임을 담당하는 근육을 말하는데, 이 소근육의 움직임이 뇌의 전두엽(前頭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두엽은 사고, 판단,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영역입니다. 키보드나 터치스크린이 아닌 손으로 직접 글자를 쓰는 과정이 뇌에 직접적인 자극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대학교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손으로 쓰는 행위가 타이핑보다 뇌의 더 넓은 영역을 활성화한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출처: Frontiers in Psychology).
저는 솔직히 어릴 때 일기를 꾸준히 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숙제로 억지로 몇 줄 썼던 게 전부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꽤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한 줄이라도 완결된 문장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을 쌓아왔다면, 지금의 저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쓰기를 지도할 때 효과적인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에는 딱 한 줄, 완결된 문장 하나만 쓰게 합니다. 분량 압박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주제는 아이가 직접 고르게 합니다. 오늘 맛있었던 것, 억울했던 일, 재밌었던 게임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 낭독(朗讀) 연습을 병행합니다. 낭독이란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소리와 문자와 의미가 동시에 연결되는 과정입니다. 특히 초등 3학년 이전에는 눈으로만 읽는 묵독(默讀)보다 낭독이 읽기 유창성 확보에 훨씬 효과적입니다.
- 분량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늘리도록 기다립니다. 어른이 먼저 "더 써"라고 하면 쓰기 자체가 싫어집니다.
사고력 키우기
AI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검색 능력이 아닙니다. AI가 내놓은 답변을 이해하고, 그게 맞는지 판단하고,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의 뿌리가 결국 문해력이고, 문해력의 뿌리가 말하고 쓰는 연습입니다.
책을 많이 읽히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읽은 내용을 자기 경험과 연결해서 생각해보고, 이 작가가 왜 이 단어를 골랐을까 질문해보고, 그 생각을 말이나 글로 꺼내보는 과정 없이는 사고력이 깊어지기 어렵습니다. 사고력은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으면 발달하지 않는다는 말이 제 경험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훈련을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저녁 아이에게 "오늘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아이가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